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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산구 문화예술

by mysdkr

1.도교문화

  도교문화가 노산문화의 대표이다. 진한시기부터 노산이 바로 신선, 방술과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진나라때 진시황이 노산을 다니고 서복을 파견하여 바다를 건너 불로초를 구하라는 전설이 전해져 있어 노산에다가 신비로움을 더하게 했다. 노산 도교 문화는 서한시기 장염부가 삼관전을 세워서 부터 시작되어 전파되기 시작했다. 당나라때 당현종이 노산을 “부당산”으로 봉하였고 채선약산방을 건설하라는 명을 내리셨고 그 유적이 지금도 보존돼 있다. 북송나라때 송태조가 유여졸을 화개진인으로 봉하였고 태평궁을 지어 주었다. 금원이후 노산도교 전성기를 맞이했고 전진교의 전파 중심이 되어 “도교전진천하제2총림”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청나라 중반에 이를러 노산의 궁관 백여처에 달했고 “9궁 8관 12암”이라는 말도 있었다.

  도교 교의를 전파하는 동시에 노산 도교가 전통 중의학, 양생학, 철학, 무술, 음악등 문화 내용을 전승받고 발전을 시켜 두터운 문화적 앙금을 형성하였다.

  노산논도(도를 논하면서 진리를 추구한다.)

  근년이래 청도 노산 논도(论道) 조직위원회에서 “중국 노산 논도”행사를 수번이나 개최했다. “노산논도”의 내용은 수행의 도, 문화의 도, 양생의 도 등을 포함하고 현문강경(玄门讲经), 양생학 포럼, 도교문화 전시등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행사목적은 중국 우수한 전통문화를 계승 전파하며 노산 도교문화를 발굴, 정리, 보호를 통해 노산의 지명도와 영향력을 높이고 노산을 중국 도교문화의 전시중심, 체험중심으로 육성시키고 산동성의, 심지어 중국의 유명한 문화관광 브랜드로 육성시킴으로서 활력이 넘치고 인문 매력이 충만한 현대화 신도시건설과 화합한 사회 구축하는 데 적극 이바지하는 것이다.

  2. “불교문화”: 노산 불교는 17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위진시기에 발족돼 수나라와 당나라시기에 전성을 맞았다. 명나라때 큰 발전을 거두었다가 청나라때 발전세가 기울어지게 되었다. 송불사, 조음원, 혜거원, 법해사, 백운암, 해인사, 화암사등 사절이 선후로 건설되었고 법현, 삼산, 자첨, 선화등 고승들이 노산에서 불법을 전파한 적이 있다.

  3.문물고적

  노산의 문물 고적이 상당히 많다. 고대 유적, 고분, 고건축물, 고 석굴사, 고 마애석각, 그리고 근현대 중요한 사기와 대표성 건축등 많은 종류로 약 백여처가 있다. 그중, 국가급 문물보호재 1곳, 성급 문물보호재2곳, 시급 문물보호재2곳, 구급 문물보호재 50곳이다.

  1951년 청도시에서 노산 시외지역 문물보호팀을 구성하여 노산지역의 문물에 대한 보호를 강화하기 시작했고 질차관, 오지동이, 동호, 동정, 오수전, 철검등 문물을 수거하였고 청도시 박물관으로 소장시켰다. 노산구 기록문헌보관소에도 귀중한 문물을 소장하고 있다. 사명문서, <북천집>, 청나라 광서황제때 출간된 <24사>등 정품들이 포함돼 있다.

  사명문서: 속칭 “승지”이다. 고대 황제가 관직, 재물 등을 하사할 때 쓴 명령이다. 노산 기록문헌보관소에 명나라와 청나라의 사명문서 4건을 소장하고 있다. 그중 명나라 천계원년(1621년)의 사명문서 2건, 천계6년(1626년) 1건, 청나라 가경4년(1799년)1건을 소장하고 있다. 사명문서는 두루마리의 형식으로 보존돼 있다. 최상단은 은빛이 난 용 2마리로 전서로 씌여진“봉천사명” 넷 글자를 감도는 모습을 짜서 매우 단장하고 고풍스럽다.

  청광서판24사:<24사>는 총 3249권 약 4000만 글자이다. <사기>에서 기록된 전설 속의 황제로 부터 <명사>에서 기록된 명나라 숭정황제까지 약 4000여년의 정치, 경제, 문화예술과 과학기술등에 관한 사료를 기재돼 있다.

  동기: 노산구 궁관, 사절이 많아서 동으로 만들어진 신상과 공양기구도 많다. 청도시 박물관에 노산지역에서 출토된 청동기 2건을 소장하고 있다. 하나는 전국시대의 코퍼 티포트, 하나는 한나라때의 청동정이다. 전부 청동기중의 상등품에 속한다.

  노산도교건축군

  노산 도교 건축군은 태청궁, 상청궁, 태평궁, 명하동, 화루궁, 울죽암, 백운동, 명도관, 관왕묘, 태화관, 창해광등 11개 고건축물이 포함돼 있다. 시간은 한나라때부터 청나라때까지다. 노산 도교의 역사전승 모습이 기록돼 있고 고대의 정치, 경제, 문화와 사회생활 풍습도 반영돼 중국 북방에서 대표적인 도교건축군으로 건축물과 원림예술의 완벽한 조화를 나타내고 있다. 기술이 뛰어나고 모양이 고풍스럽고도 우아해서 중국 전통건축의 예술 특점을 정교하게 전시한다. 

  각 궁관의 건축자리를 선택할 때 자연지세에 따라 자연스럽게 배치를 해서 건축했다. 지세의 변화에 따라 점차 추진돼 자연지세의 고도차를 활용하여 장엄하고 엄숙한 종교 순례의 분위기를 영조한다.

  내부 구조면에서 볼 때 정전이 대부분 건축물의 중심에 자리잡고 곁채들은 사주로 부터 정전을 둘러싸고 있는 형태로 구성돼 엄격한 등급제도를 지킨다. 법당의 등급은 공양하는 신선의 등급에 따라 규정된다. 보통적으로 삼청, 노군, 옥황상제를 정전으로 공양한다. 부속 건축들은 각 각도, 각 차원에서 본체 건축을 둘러싸여 바로 별들이 달을 에워싸다는 것과 같다. 이것은 역시 도교의 철학사상과 우주에 대한 인식을 반영한다.

  노산 도교건축군은 대부분 경산정(硬山顶)양식이지만 건축물의 높이, 문수(吻兽중국식 건축의  용마루 끝에 있는 동물 조각품), 장식품등면에서 색다른 처리를 통해 서로 다른 등급을 나타낸다. 노산도교 건축군의 건축물 양식은 명청 양식을 위주로 하고 삼진 혹은 이진식 정원으로 정전양측에 곁채와 사랑채, 복도, 회랑등이 설치돼 있다. 건축자재는 주로 노산현지에서 나온 화강암을 위주로 벽돌, 나무, 기와등으로 건축물 주체를 만들어 낸다. 동시에 노산 도교건축군중의 백운동, 명하동같은 경우에는 천연적인 동굴을 기초로 해서 약간의 수건을 거쳐 수련소를 만들어 내 도교의 “동천복지”신앙을 생생히 반영하고 있다.

  4.무형문화재

  노산에 민간음악, 민간문학, 민간무용등을 비롯한 무형문화재가 많다. 그중 노산민간설화, 노산 도교음악, 당랑권등이 국가급 무형무화재목록에 수록되었다.

  현제 노산구에서 국가급 무형문화재 3건, 성급 무형문화재4건, 시급 무형문화재8건, 구급 무형문화재 41건을 성공적으로 신고를 했고 공포했다.

  노산 민간설화: 노산 민간 설화의 내용이 풍부하고 줄거리 감동적이며 언어 표현이 소박하고 유모적이다. <석노인의 전설>, <대추 애기>, <노산의 전설>등 널리 알려져 있는 명편이 많다. 1983년부터 노산구 문화주관 부서에서 규모가 큰 민간 수집행사를 조직하여 총 17분류 5600여개의 민간 설화를 수집하여 <노산 민간 설화 전집>, <청도 해양 민간 설화>등 22개의 민간 설화 집을 발간했다.

  노산 도교 음악: 노산 도교 음악은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고 각 계층, 각 종류의 음악 형식을 용합하여 이루어진 음악형식이다. 노산 도교 음악은 독특한 풍격을 창조하여 문명도장의 “노산운”을 형성했고 소중한 민족문화유산이다..

  노산 도교 은악중 비교적 유명한 곡목은 <청도>, <망해>, <육문청천>, <이하천>등이 있다.

  당랑권: 당랑권은 명나라 말기 청나라 초기의 교동사림인 우칠(于七)이 창조한 것이다. 전해진 이야기에 따르면 우칠이 매이를 잡으려는 사마귀의 움직임을 보고서 그 동작에다가 음과 양, 굳셈과 부드러움, 허와 실의 원리를 부여하고 상하, 좌우, 전후, 진퇴등 법도를 가하고 고대에서 전해진 18대 명수의 수법들을 한 몸으로 융합시켜 당랑권을 창출했다고 한다. 우칠은 산동 치하사람이었고 명말청초의 농민봉기군 수령이었다. 실패후 노산안에 은퇴하여 화엄사에서 “선화”의 법호로 출가했고 화엄사의 제3대 방장이었다. 당랑권이 노산에서 전해 나온 후 산동반도를 중심으로 해서 점차 태극 당랑, 매화 당랑, 칠성 당랑, 원앙 당랑등 유파를 형성했고 산동반도지역의 문화적 앙금을 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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