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다오지역은 옛날에는 교오(膠澳)라고 불렀다. 1891년(청 광서(光緖) 17년)청나라 정부는 교오(膠澳)에 방위시설을 설치하면서부터 칭다오(靑島)의 행정편제 시대가 시작되었다. 익년 등주진(登州鎭) 총병장 장고원(章高元)이 부대를 인솔하여 교오(膠澳)로 이주하게 되었다. 1897년 11월 독일은 “거야교안(巨野敎案)” 구실로 삼아 교오(膠澳)를 강점하고 청정부를 강요하여 1898년3월6일 <교오조계조약(膠澳租界條約)>을 맺었으며 교오(膠澳)는 독일식민지가 되었고 산동도 독일의 세력범위에 들어가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후 1914년11월 일본이 독일에 이어 교오(膠澳)를 점령하여 군사 식민통치를 실시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후 중국인민들은 칭다오를 회수하기 위해 용감하게 투쟁해왔다. 1919년 칭다오 주권 회복문제를 계기로 유명한 “오사”운동(五四運動)이 일어난 것이고 일본은 1922년 2월 4일 할수 없이 중국정부와 <산동현안해결조약(解決山東懸案條約)>을 체결하게 되었다. 같은해 12월 10일 중국은 교오(膠澳)를 수복한 후 통상을 위한 부두를 설치하였고, 교오상부독판공서(膠澳商埠督辦公署)를 설립하여 북양정부에 귀속시켰다. 이 행정구역은 독일교오(膠澳)조계지와 동일했다. 1929년4월 남경국민정부는 교오(膠澳)통상부두를 인수하여 그해 7월에 칭다오특별시를 설립하였다. 1930년에 칭다오시로 개칭되었다.
1938년 1월 일본이 다시 칭다오를 점령하였고 1945년 9월 국민당정부는 미국의 지원을 받아 칭다오를 관할하였는데 계속해서 특별시로 지정했다.
1949년 6월 2일 칭다오시가 해방되었다. 해방 후 칭다오시는 산동성 관할 도시로 편제되었다. 1981년 중국 15개 경제중심도시로 선정되었고; 1984년 4월 중국14개 대외개방연해항구도시 선정되었으며; 1986년 10월 15일 국무원으로부터 국가계획단열도시로 공식적으로 비준되어 성급 경제 관리권한을 부여받았으며; 1994년 2월 전국 15개 부성급도시중 하나가 되었다.
역사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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